새로운 합의 메커니즘: 리스테이킹(Restaking)과 공유 보안
블록체인 보안과 효율성을 한 단계 끌어올릴 잠재력을 가진 혁신적인 기술인 리스테이킹(Restaking)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더리움은 지분증명(PoS)으로 전환하며 네트워크 보안을 '스테이킹(Staking)'이라는 메커니즘에 의존하게 되었다.(9월3일, "이더리움과 스테이킹 그리고 보안" 참조) 리스테이킹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미 스테이킹된 자산을 '재활용'하여 다른 프로토콜의 보안까지 강화하는 개념이다. 이는 마치 하나의 담보물로 여러 개의 대출을 받는 것과 유사하다. 이 글을 통해 리스테이킹의 원리와 그 핵심 프로토콜인 아이겐레이어(EigenLayer)를 중심으로, 이 기술이 블록체인 생태계에 가져올 변화와 잠재적 위험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스테이킹의 한계와 리스테이킹의 등장
스테이킹은 지분증명(PoS) 블록체인에서 사용자가 자신의 코인(예: 이더리움의 ETH)을 예치하고, 네트워크의 거래를 검증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그 대가로 보상을 받는 행위다. 이는 네트워크의 보안을 담보하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스테이킹에는 다음과 같은 한계가 있다.
- 자본 비효율성: 스테이킹된 자산은 오직 해당 네트워크의 보안에만 사용된다. 즉, 이미 막대한 ETH가 이더리움의 보안에 묶여 있지만, 다른 새로운 프로토콜들은 그 자본을 활용할 수 없다.
- 보안 파편화: 새로운 블록체인이나 프로토콜이 등장할 때마다 자체적인 보안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검증자 집단을 모으고 토큰을 발행해야 한다. 이는 비효율적이며, 각 프로토콜의 보안이 파편화되는 문제를 낳는다.
리스테이킹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리스테이킹은 사용자가 이미 스테이킹하고 있는 ETH를 다시 한 번 담보로 제공하여, 다른 프로토콜의 검증자로 참여하고 추가적인 보상을 받는 개념이다. 이는 '보안 자본'을 공유하고 재활용하는 혁신적인 방식이다.
2. 리스테이킹의 작동 원리: 아이겐레이어(EigenLayer)를 중심으로
아이겐레이어(EigenLayer)는 리스테이킹의 개념을 현실화한 이더리움의 핵심 프로토콜이다. 아이겐레이어는 이더리움의 검증자들(혹은 이더리움 스테이킹 대행 서비스에 자산을 맡긴 사용자들)이 자신의 스테이킹된 ETH를 아이겐레이어 컨트랙트에 다시 예치할 수 있게 한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 1단계: ETH 예치: 사용자는 이미 스테이킹된 ETH(또는 Lido의 stETH와 같은 유동성 스테이킹 토큰)를 아이겐레이어 컨트랙트에 예치한다.
- 2단계: 약관 동의: 사용자는 자신이 보안을 제공하고자 하는 특정 프로토콜(A, B, C 등)의 약관에 동의한다. 이 약관에는 해당 프로토콜의 규칙을 위반할 경우 담보로 제공한 ETH의 일부가 몰수(Slashing)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된다.
- 3단계: 검증 참여: 사용자는 해당 프로토콜의 검증자 역할을 수행하며, 블록 검증, 데이터 저장, 오라클 제공 등 다양한 보안 서비스를 제공한다.
- 4단계: 보상 획득: 검증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사용자는 이더리움 스테이킹 보상 외에 해당 프로토콜이 제공하는 새로운 보상 토큰을 추가로 받게 된다.
이처럼 아이겐레이어는 이더리움의 강력한 보안을 '대여'해주는 마켓플레이스 역할을 수행한다. 이더리움의 보안을 '공유 보안(Shared Security)'이라는 형태로 다른 프로토콜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3. 리스테이킹이 가져올 혁신적인 변화
리스테이킹은 블록체인 생태계에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 새로운 네트워크의 보안 강화: 새로운 레이어 2 네트워크, 데이터 가용성(DA) 레이어, 오라클 등은 자체적인 검증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대신, 이더리움의 방대한 보안 자본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초기에 보안 취약성을 가질 수 있는 신생 프로토콜의 안정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 자본 효율성 증대: 하나의 ETH가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보안은 물론, 여러 다른 프로토콜의 보안까지 동시에 담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잠들어 있던 자본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 수익률 증대: 리스테이킹에 참여하는 사용자는 이더리움 스테이킹 수익 외에 추가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사용자들이 이더리움에 장기적으로 스테이킹하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된다.
- 혁신의 가속화: 새로운 프로젝트들은 값비싼 자체 보안 네트워크 구축 과정 없이도 아이겐레이어의 공유 보안을 활용하여 서비스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블록체인 기술 혁신의 속도를 가속화할 것이다.
4. 리스테이킹의 잠재적 위험성
하지만 리스테이킹은 높은 잠재력만큼이나 심각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 복합적인 슬래싱(Slashing) 리스크: 리스테이킹에 참여하는 사용자는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슬래싱 규칙뿐만 아니라, 보안을 제공하는 다른 프로토콜들의 슬래싱 규칙까지 적용받게 된다. 만약 참여하는 프로토콜의 규칙이 복잡하거나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면, 의도치 않은 행위로 인해 담보 자산이 몰수될 위험이 커진다.
- 시스템적 리스크: 아이겐레이어는 이더리움의 보안에 대한 '지렛대(Leverage)'를 만든다. 만약 아이겐레이어에 연결된 여러 프로토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여 대규모 슬래싱이 일어나면, 이는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안정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담보 과부하(Collateral Overload)'라는 새로운 형태의 시스템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 중앙화 우려: 리스테이킹은 소수의 대규모 스테이킹 서비스 제공자(예: Lido)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이들이 아이겐레이어에서 여러 프로토콜의 보안을 동시에 책임지게 되면,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탈중앙화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5. 우리가 보아야 할 것들
리스테이킹과 공유 보안은 블록체인 생태계의 다음 단계를 열어줄 중요한 기술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이 기술의 진화를 보아야 한다.
- 기술적 안정성: 아이겐레이어와 같은 리스테이킹 프로토콜의 스마트 컨트랙트가 얼마나 안전하게 설계되었는지, 그리고 실제 대규모 자금이 몰렸을 때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지속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 리스크 관리: 리스테이킹의 복잡한 위험성을 어떻게 관리하고 완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하다. 이는 참여하는 개별 사용자들의 위험 관리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시스템적 위험을 관리하는 방법을 포함한다.
- 탈중앙화와의 균형: 리스테이킹이 블록체인 생태계에 효율성을 가져오는 동시에, 탈중앙화라는 근본적인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감시와 기술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리스테이킹은 블록체인 기술의 '자본 효율성'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해법이다. 이는 블록체인이 더욱 강력하고 유연한 인프라로 진화하는 중요한 단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만 리스테이킹이 진정한 의미의 '미래 기술'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