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은 어떻게 걷을까, 탈중앙화된 세상에서
“세금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만약 당신이 블록체인 기반의 DAO(탈중앙화 자율조직)에서 일하고, 지갑 주소 하나로 소득을 벌며, 스마트 계약으로 보상을 받는 삶을 살고 있다면, 국세청은 과연 당신을 찾아낼 수 있을까?
국가는 왜 세금을 걷는가
세금은 단순한 수익이 아니다. 세금은 국가라는 '공공의 플랫폼'을 유지하기 위한 접속료이자, 집단적 생존을 위한 연료다. 군대, 도로, 병원, 교육… 이 모든 것은 세금으로 유지된다. 20세기형 국가는 '국경 기반 물리적 공간'에서 작동했기에, 소득의 흐름도 뚜렷했고, 징수의 실체도 명확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노동은 공간을 넘었고, 소득은 탈물질화되었으며, 기술은 중앙집중의 원리를 해체하고 있다. 국가는 기존의 조세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을까?
세금, 소득, 그리고 디지털
현대의 세금은 대부분 소득을 기준으로 부과된다. 법인은 법인세를, 개인은 소득세를 낸다. 그런데 '소득'이란 개념조차 디지털 시대에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한 NFT 크리에이터가 디지털 아트를 민팅해 DAO에서 판매하고 수익을 거둔다. 이 수익은 이더리움으로 지갑에 들어오고, 그 지갑은 국적도 주소도 없다. 거래 내역은 영구히 블록체인에 남지만, 국세청은 이 지갑이 '누구 것'인지 특정할 방법이 없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소득은 어떻게 정의되고, 누가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가? 국가가 지갑을 식별하지 못한다면, 조세주권은 실질적으로 무너진다.
기술은 조세를 재정의한다
블록체인, 프라이버시 코인, 제로지식증명(zk-proof), DID(탈중앙화 신원), 그리고 AI 기반 자동화된 회계 시스템. 이 기술들은 기존 조세시스템에 세 가지 도전장을 던진다.
- 익명성: 조세의 기본 전제는 '식별 가능성'이다. 탈중앙화는 이를 무너뜨린다.
- 국경 없는 소득: 디지털 자산은 국가 간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세율이 낮은 국가로의 소득 이동은 클릭 한 번이면 가능하다.
- 자산의 실시간 평가 불가능성: 블록체인 상의 자산은 유동성과 가격 변동성이 커 과세 시점과 금액 산정이 매우 어렵다.
하지만 기술은 동시에 해결책이기도 하다. 블록체인은 투명성을, 스마트계약은 징수의 자동화를, AI는 소득의 패턴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기술은 국가에게도 칼을 쥐여준다. 문제는 누가 더 빨리 휘두르느냐의 싸움이다.
오늘의 현실: 국가는 뒤쫓고, 개인은 앞서간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암호화폐 자산에 대해 '양도소득세' 중심으로 과세하려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는 마치 고래를 낚싯줄로 낚으려는 시도와 같다.
크립토 소득은 거래소 밖에서도 발생하고, 스테이킹·디파이·에어드랍·NFT·P2E(Play-to-Earn)까지 확장되고 있다. 더욱이 개인은 지갑을 분산시켜 소득의 파편화를 꾀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유럽, OECD 등은 트래블룰, 지갑 식별 의무화, 국제 암호자산 정보 교환 시스템(CARF)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기술의 진화 속도는 제도보다 빠르다.
내일의 조세: 기술적 상상력의 전장
그렇다면 탈중앙화된 미래에서 세금은 어떻게 걷힐까? 몇 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1. 자동화된 조세 징수 스마트계약
DAO나 DApp이 자동으로 소득의 일정 비율을 '조세 스마트컨트랙트'에 할당하는 방식. 예를 들어, DAO에서 급여가 지갑에 들어올 때 자동으로 5%가 국가별 조세 풀로 분배되는 구조다. 문제는, 국가의 신뢰성과 합의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것.
2. 디지털 영토 기반 조세
물리적 국경이 아닌 디지털 영토(플랫폼/지갑 기반)을 기준으로 과세.
예: A국 지갑 주소에서 수령한 보상은 A국에 세금을 낸다. 이는 DID(탈중앙 신원확인)과 연동될 가능성이 있다.
3. 거버넌스 토큰 기반 조세 시스템
DAO들이 자체적으로 세금 체계를 만들고, 커뮤니티 참여를 전제로 공동체 재정을 운용하는 모델. 이는 국가보다 DAO가 빠르게 실험 중이다. 현실 세계에선 도시 단위가 가장 먼저 시도할 수 있다.
조세는 권력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조세는 단순히 “얼마를 걷을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걷을 자격이 있는가”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국가가 신뢰받지 못한다면, 시민은 지갑을 닫고, DAO는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기술은 조세의 미래를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조세 질서를 가능하게 할 도구다.
문제는 국가가 이 새로운 질서를 설계할 상상력과 기술력을 갖췄는가이다.
결국, 미래의 조세 시스템은 중앙의 권위가 아닌, 분산된 합의와 신뢰의 코드 위에서 작동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