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체인 파생상품: 블록체인 간 유동성 연결의 새 지평
블록체인 금융의 다음 단계인 크로스체인 파생상품(Cross-Chain Derivatives)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초기 블록체인 생태계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솔라나 등 여러 개의 독립된 섬처럼 존재했다. 각 체인은 자신의 고유한 유동성을 가지며, 이 섬들 사이를 이동하는 것은 복잡하고 위험한 과정이었다. 이는 탈중앙화 금융(DeFi)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크로스체인(Cross-Chain) 기술이며, 이 기술이 파생상품 거래소(PerpDEX)와 결합하며 유동성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 글을 통해 크로스체인 기술의 원리가 무엇인지, 여러 체인 간의 포지션 이동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레이어제로(LayerZero), 웜홀(Wormhole)과 같은 주요 프로젝트들이 어떻게 기술적 난제를 극복하며 PerpDEX에 적용되고 있는지 기술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지난 9월 19일 블로그 "크로스체인 통신과 상호운용성"도 참조해 보기를 바란다.
1. 파편화된 유동성의 문제: 고립된 블록체인 섬들
탈중앙화 금융(DeFi)이 성장하면서 이더리움 외에도 솔라나, 폴리곤, 아비트럼 등 수많은 고성능 블록체인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각자의 장점을 내세우며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했지만, 이로 인해 전체 암호화폐 시장의 유동성은 파편화(Fragmentation)되었다.
- 자산 이동의 비효율성: 사용자가 이더리움 기반의 자산을 솔라나 기반의 PerpDEX에서 거래하려면, 브릿지(Bridge)라는 기술을 통해 자산을 변환하고 전송해야 한다. 이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높은 수수료를 발생시키며, 브릿지 자체의 보안 취약성 때문에 해킹 위험에도 노출된다.
- 불가능한 포지션 이동: 현물 자산의 이동은 가능하지만,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선물 포지션(Futures Position) 자체를 체인 간에 직접 이동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한 체인의 PerpDEX에서 연 포지션을 다른 체인으로 옮기지 못하면, 트레이더는 유동성이 더 좋은 다른 체인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크로스체인 파생상품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블록체인 금융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 크로스체인 기술의 원리: 블록체인 간 신뢰 확보
크로스체인 기술은 기본적으로 두 블록체인 A와 B가 서로의 상태(State)와 트랜잭션을 안전하게 검증하고 통신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 브릿지(Bridge)의 한계: 기존의 자산 브릿지는 주로 자산을 한 체인에 잠그고(Lock), 다른 체인에 미러링된 토큰(Wrapped Token)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 방식은 자산을 잠그는 스마트 컨트랙트에 대한 중앙화된 통제나, 외부 검증인(Relayer)의 신뢰에 의존해야 했다.
- 메시징 프로토콜의 등장: 최신 크로스체인 기술은 단순한 자산 이동을 넘어, '메시지(Message)'를 안전하게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메시지에는 '체인 A의 스마트 컨트랙트 X에서 트랜잭션 Y가 발생했다'는 정보가 담긴다. 체인 B는 이 메시지를 받고, 그 유효성을 검증한 후 원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2.1. 레이어제로(LayerZero): 경량 클라이언트와 릴레이어
레이어제로는 옴니체인(Omnichain) 시대를 목표로 하는 메시징 프로토콜이다.
- 기술적 원리: 레이어제로는 각 체인에 배포된 경량 클라이언트(Light Client)와 외부의 릴레이어(Relayer) 및 오라클(Oracle)을 사용한다.
- 릴레이어: 체인 A에서 발생한 트랜잭션 증명(Proof)을 읽어 체인 B로 전달한다.
- 오라클: 체인 A의 블록 헤더를 읽어 체인 B로 전달한다.
- 검증: 체인 B의 경량 클라이언트는 릴레이어가 전달한 트랜잭션 증명과 오라클이 전달한 블록 헤더가 일치하는지를 비교하여, 체인 A의 트랜잭션이 정말로 발생했는지 검증한다.
- 장점: 릴레이어와 오라클이 서로 독립적으로 작동하므로, 둘 중 하나만 악의적으로 행동하면 트랜잭션이 실패하도록 설계되어 보안성이 높다.
2.2. 웜홀(Wormhole): 가디언을 통한 검증
웜홀은 여러 체인 간의 메시지 전달을 가디언(Guardians)이라고 불리는 신뢰할 수 있는 검증인 그룹에 의존한다.
- 기술적 원리: 웜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약 20개의 가디언 노드들이 체인 A에서 발생한 트랜잭션을 관찰한다. 가디언의 2/3 이상이 서명하여 트랜잭션의 유효성을 보장하면, 이 메시지는 체인 B로 전달되어 실행된다.
- 장점: 검증인 그룹의 수가 적은 대신, 빠른 속도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 실시간성이 중요한 파생상품 거래에 유리하다.
3. PerpDEX에서의 크로스체인 적용: 포지션 이동의 기술적 과제
크로스체인 메시징 프로토콜이 PerpDEX에 적용될 때, 가장 큰 도전은 '포지션 이동' 자체를 구현하는 것이다. 포지션 이동은 단순한 토큰 전송이 아니다.
- 기술적 과제: 원자성(Atomicity) 확보: 포지션 이동은 체인 A에서 포지션을 닫는 행위(Close)와, 체인 B에서 그와 동일한 포지션을 여는 행위(Open)가 동시에(Atomically)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A에서 닫는 데 성공했는데 B에서 여는 데 실패하면, 사용자는 포지션 없이 자산만 잃거나 이중으로 포지션을 가지게 되는 위험에 처한다.
- 해결책: 크로스체인 스마트 컨트랙트 상호작용: PerpDEX는 메시징 프로토콜을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포지션을 이동시킨다.
- 사용자가 체인 A의 PerpDEX 스마트 컨트랙트에 포지션 이동을 요청한다.
- 스마트 컨트랙트는 A의 포지션을 잠그고, 메시징 프로토콜을 통해 포지션의 상세 정보(레버리지, 청산가 등)를 체인 B로 전달한다.
- 체인 B의 PerpDEX 컨트랙트는 이 메시지를 받아 정확히 동일한 포지션을 개설한다.
- B에서 포지션 개설이 성공하면, B 컨트랙트는 다시 메시징 프로토콜을 통해 A에게 성공 신호를 보내고, A 컨트랙트는 잠갔던 포지션을 완전히 닫는다.
이 과정에서 '신뢰할 수 있는 메시지 전달'은 PerpDEX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핵심 기술이 된다.
4. 크로스체인 파생상품의 시장적 의미
크로스체인 파생상품은 PerpDEX 시장에 다음과 같은 혁신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 유동성의 통합: 트레이더는 더 이상 특정 체인의 유동성에 갇히지 않는다. 이는 유동성 풀의 깊이를 심화시켜 슬리피지(Slippage)를 줄이고, 중앙화 거래소(CEX)에 대한 경쟁력을 높인다.
- 최적의 환경 선택: 트레이더는 거래 수수료가 가장 저렴하고, 실행 속도가 가장 빠른 체인의 PerpDEX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거래할 수 있다.
- 위험 분산: 트레이더는 단일 체인의 기술적 위험(예: 솔라나 네트워크 다운)으로부터 포지션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체인으로 포지션을 신속하게 대피시킬 수 있다.
5. 크로스체인 금융의 새로운 지평
크로스체인 기술은 블록체인 생태계의 패러다임을 '다중 체인(Multi-Chain)'에서 '상호 연결된 옴니체인(Omnichain)'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PerpDEX는 이 옴니체인 환경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을 분야다.
앞으로의 크로스체인 파생상품은 더욱 복잡하고 정교한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체인에서 담보물을 예치하고, 다른 체인에서 그 담보물을 기반으로 포지션을 개설하는 '분리된 기능 수행(Separated Functionality)' 모델이 등장할 수 있다. 크로스체인 파생상품은 블록체인 금융이 진정한 의미에서 국경과 체인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통합된 글로벌 금융 시장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기술적 도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