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k, Rollup, L2… 도대체 이게 뭔가요?
1. 블록체인, 왜 이렇게 느리고 비싼가요?
블록체인의 딜레마 : 탈중앙화, 보안, 확장성 (The Blockchain Trilemma)
최근 몇 년간 '블록체인'이라는 단어는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었습니다. 금융, 게임,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킬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막상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들을 사용하다 보면, '이거 왜 이렇게 느리지?', '수수료가 너무 비싼데?' 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메인 블록체인은 여전히 초당 처리할 수 있는 거래량이 매우 낮습니다. 비트코인은 초당 7건, 이더리움은 15~30건 정도죠. 비자(VISA)가 초당 2만 건 이상을 처리하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블록체인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 즉 '블록체인 트릴레마(Blockchain Trilemma)' 때문입니다. 이는 블록체인이 동시에 세 가지 목표(탈중앙화, 보안, 확장성)를 모두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이론입니다.
-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모든 참여자가 거래 장부를 공유하고 검증함으로써 특정 주체에 대한 의존성을 없애는 것.
- 보안(Security):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해킹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것.
- 확장성(Scalability): 거래 처리량을 늘려 더 많은 사용자를 수용하는 것.
기존 블록체인은 탈중앙화와 보안을 최우선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비트코인이 대표적이죠. 수많은 노드들이 거래를 검증하기 때문에 해킹이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는 노드 간에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합의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결국, 거래 처리 속도와 용량을 희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마치 마을 전체 주민이 모여 모든 의사결정을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2. 해결책을 찾아서 : 블록체인 확장성(Scalability) 전쟁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개발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습니다.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이 문제를 "모든 것을 온체인(On-chain)에서 해결할 필요는 없다"고 정의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체인'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직접 거래 기록을 올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오프체인(Off-chain)'에서 거래를 처리하고, 그 결과만 '온체인'에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블록체인 바깥에서 거래를 빠르게 처리하고, 그 결과가 정확하다는 증거만 블록체인에 제출하는 것이죠. 마치 마을회관에서 중요한 결정만 하고, 자잘한 일들은 동네 이장님이 빠르게 처리해서 보고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오프체인 솔루션을 통칭하여 '레이어2 (Layer 2, L2)' 솔루션이라고 부릅니다. 이더리움의 메인 체인을 '레이어1 (Layer 1, L1)'이라고 부르고요. L2 솔루션은 L1의 탈중앙화와 보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L1보다 훨씬 빠르고 저렴한 거래를 가능하게 합니다.
3. L2의 대표 주자들: Rollup과 ZK
L2 솔루션은 다양한 기술로 구현되지만,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두 가지 기술이 있습니다. 바로 '롤업(Rollup)'과 '영지식증명(Zero-Knowledge Proof, ZK)'입니다.
롤업(Rollup) : 수많은 거래를 한데 묶어서 처리하기
롤업은 수많은 오프체인 거래들을 한 묶음(Bundle)으로 압축하여 L1에 기록하는 기술입니다. 마치 여러 개의 택배 상자를 하나의 팔레트에 묶어서 한 번에 배송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를 통해 L1에 기록해야 할 데이터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여, 거래 비용을 절감하고 처리 속도를 높입니다.
롤업은 다시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뉩니다.
- 옵티미스틱 롤업(Optimistic Rollup)
'옵티미스틱'은 '낙관적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기술은 "모든 거래는 일단 올바르다"고 낙관적으로 가정하고 처리합니다. 거래 결과만 L1에 제출하고, 만약 누군가 이 거래가 잘못되었다고 이의를 제기하면 일정 기간(Challenge Period) 동안 검증 절차를 거칩니다. 만약 이의 제기가 옳다면, 해당 거래는 되돌려지고 이의를 제기한 사람에게는 보상이 주어집니다. 이 방식은 추가적인 증명 과정이 없기 때문에 구현이 비교적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의 제기 기간 때문에 출금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아비트럼(Arbitrum)과 옵티미즘(Optimism)이 있습니다.
- ZK 롤업(ZK Rollup)
'ZK'는 '영지식증명'을 의미합니다. 영지식증명은 "상대방에게 내가 어떤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외에 다른 어떠한 정보도 노출하지 않고 그 사실을 증명하는 암호학적 기법"입니다.
ZK 롤업은 오프체인에서 거래를 처리한 후, 그 결과가 정확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유효성 증명(Validity Proof)'을 생성하여 L1에 제출합니다. 이 증명은 매우 작고, L1은 이 증명만으로 모든 거래가 올바르게 처리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옵티미스틱 롤업과 달리 이의 제기 기간이 필요 없기 때문에 훨씬 빠르고 안전합니다. 하지만 영지식증명을 생성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zkSync와 StarkNet 등이 있습니다.
4. zk, ZK, ZK-EVM… 이 용어들, 이제 혼동하지 마세요!
블록체인 세계에 막 발을 들여놓으면, 비슷해 보이는 용어들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정리해 드릴게요.
- zk (Zero-Knowledge): 영지식증명이라는 암호학적 개념 자체를 의미합니다.
- ZK-Rollup: 영지식증명을 활용하여 오프체인 거래를 처리하고 L1에 증명을 제출하는 L2 솔루션의 한 종류입니다.
- ZK-EVM: 이더리움 가상머신(EVM)과 호환되는 ZK 롤업을 의미합니다. 이더리움 L1에 있는 스마트 컨트랙트와 개발 도구들을 ZK 롤업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더리움 생태계의 개발자들이 L2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매우 중요한 기술입니다.
5. L2가 가져올 미래: 더 빠르고 저렴한 블록체인 세상
블록체인 트릴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L2 솔루션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L2는 수많은 사용자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일상생활에서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것입니다. 게임, DeFi(탈중앙화 금융), NFT 등 다양한 분야에서 L2 기술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서비스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죠.
결론적으로, zk, 롤업, L2는 블록체인이 우리 일상에 더 깊숙이 파고들기 위한 '확장성'이라는 숙제를 풀어가는 핵심 열쇠들입니다. 이 기술들이 만들어낼 미래는 더 이상 느리고 비싼 블록체인이 아닌, 빠르고 저렴하며 탈중앙화된 새로운 디지털 세상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