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산업은 과거와 다른 차원에서 변화하고 있다. 제조업, 건축, 에너지, 항공우주 등 다양한 공학 분야에서 ‘시뮬레이션(Engineering Simulation)’은 성능예측, 비용절감등 오랜 기간 필수적인 도구였다. 복잡한 시스템을 실제로 제작하거나 실험하기 전에 가상의 공간에서 설계하고, 계산하며,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주고 이를 통하여 개발기간 단축, 개발비용 절감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의 시뮬레이션은 고성능 컴퓨팅(HPC)에 의존해야 했고, 복잡한 물리 모델링과 방대한 연산 자원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AI, 특히 머신러닝과 딥러닝이 접목되면서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은 전례 없는 혁신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AI는 물리적 법칙과 수학적 모델을 단순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완하고 가속화하며, 새로운 차원의 예측과 최적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본 글에서는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의 본질과 한계, 그리고 AI가 제공하는 혁신적 가능성을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의 본질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은 물리학, 수학, 재료공학, 컴퓨터 과학이 결합된 응용 학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유체역학 시뮬레이션(CFD), 구조 해석(FEA), 전자기장 해석(EM Simulation), 열 전달 분석 등이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에서는 충돌 테스트를 실제 차량으로만 수행할 경우 비용과 시간이 막대하게 소요된다. 대신 시뮬레이션을 통해 충돌 시 차체 변형, 승객의 충격량, 에어백 전개 속도 등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 항공우주 산업에서도 날개 형상이나 엔진 내부의 공기 흐름을 시뮬레이션하여 최적의 설계를 도출한다.
그러나 기존 시뮬레이션은 계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문제가 있다. 격자(Grid)를 세분화하면 정확도는 올라가지만, 연산 시간과 비용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따라서 실무에서는 정확성과 계산 가능성 사이에서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2. AI가 가져오는 혁신
AI는 이러한 한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머신러닝 기반의 모델은 복잡한 수치해석 대신 데이터에서 패턴을 학습하여 결과를 빠르게 예측한다. 특히 딥러닝은 기존 시뮬레이션에서 며칠이 걸리던 연산을 몇 초 만에 대체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2-1. 가속화된 시뮬레이션
- AI는 기존 시뮬레이션 데이터셋을 학습하여 ‘근사 모델(Surrogate Model)’을 만든다. 이 모델은 입력 조건에 따른 결과를 빠르게 예측할 수 있어, 수백만 번의 반복 실험이 필요한 최적화 문제에서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2-2. 하이브리드 시뮬레이션
- AI가 전통적 물리 모델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방식이다. 물리 법칙이 잘 정의된 영역은 수치해석으로 풀고, 계산이 복잡하거나 불확실성이 큰 영역은 AI로 추정하는 식이다. 이는 계산 효율과 정확성을 동시에 높이는 접근법이다.
2-3. 실시간 예측 및 제어
- 과거에는 시뮬레이션이 설계 단계에서만 활용되었다면, AI 기반 시뮬레이션은 운영 단계에서도 실시간 적용이 가능하다. 예컨대, 스마트 팩토리에서는 생산 라인의 상태를 AI가 시뮬레이션 기반으로 예측·제어하여 불량률을 줄인다.
3. 산업별 적용 사례
3-1. 자동차 산업
- 자율주행 차량 개발에서는 수많은 주행 상황을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기존 물리 모델링만으로는 불가능했던 속도와 다양성을 AI 시뮬레이션이 보완한다.
- 배터리 열 관리, 충돌 안전성 예측, 공기역학적 최적화에서도 AI 모델은 연산 속도를 대폭 줄이며 설계 혁신을 이끌고 있다.
3-2. 건축 및 토목
- 초고층 빌딩이나 교량은 풍하중, 지진, 열팽창 등 다양한 물리적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AI 기반 시뮬레이션은 이러한 복잡한 변수를 빠르게 분석하여 안전성과 비용 효율성을 높인다.
3-3. 항공우주 산업
- 제트 엔진 내부의 유동 시뮬레이션은 고전적 CFD로는 며칠이 걸린다. 그러나 AI 근사 모델은 몇 초 만에 동일한 예측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설계 주기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키고, 새로운 형상 탐색을 가능케 한다.
3-4. 에너지 산업
- 풍력 발전의 블레이드 최적화, 태양광 발전 효율 예측, 원전 안전성 분석 등에서 AI는 시뮬레이션을 보완해 더 정확한 운영 전략을 제시한다. 특히 신재생에너지의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4. 기술적 도전과 윤리적 고려
AI가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지만, 아직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 데이터 의존성: AI 모델은 학습 데이터의 품질에 따라 성능이 좌우된다. 그러나 시뮬레이션 데이터는 생성 비용이 크며, 실제 현장 데이터와 불일치할 수 있다.
- 설명 가능성: 엔지니어링은 안전과 직결되므로 예측 결과의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하지만 딥러닝 모델은 ‘블랙박스’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물리 기반 AI(Physics-Informed AI)’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윤리와 책임: 만약 AI 예측이 잘못되어 사고가 발생한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소프트웨어 개발자, 엔지니어, 기업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5. 미래 전망
향후 10년간 AI 기반 시뮬레이션은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개념과 결합하며 더욱 강력한 도구로 발전할 것이다. 디지털 트윈은 실제 물리 시스템을 디지털 세계에 그대로 복제하여, 실시간으로 상태를 예측하고 최적화하는 기술이다.
AI는 디지털 트윈의 두뇌 역할을 하며, 수많은 시나리오를 빠르게 계산하고 최적의 결정을 제시한다. 이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의료, 도시 계획, 기후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것이다.
결국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과 AI의 융합은 단순히 효율 향상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확장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우리는 AI 덕분에 더 복잡하고 위험하며, 동시에 더 혁신적인 설계를 시도할 수 있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은 산업 발전의 핵심 도구였고, AI는 그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고 있다. 기존의 물리 기반 접근법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AI는 이를 가속화하고 보완하며 실시간 적용을 가능하게 한다. 자동차, 항공우주,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에서 이미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으며, 향후 디지털 트윈과 결합해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결국 AI와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의 융합은 단순한 기술적 혁신이 아니라, 산업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는 혁신적 패러다임 전환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