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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토 유니버스 –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들

크립토 유니버스 –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들

1. 기술이 만든 유토피아, 인간이 만든 디스토피아

블록체인은 신뢰 없는 환경에서 신뢰를 만드는 기술이다. 탈중앙, 검열 불가, 투명한 거래 기록은 분명 기존 금융 시스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도 인간의 탐욕과 오판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것을 암호화폐의 역사 속 사건들이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부터 소개할 이야기들은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단순한 기술 실패가 아니라, 기술 위에 쌓인 인간 시스템이 무너지는 순간들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실화들은, 우리에게 기술을 신뢰하기 전 사람과 구조를 먼저 보라고 경고한다.

 

2. 테라-루나 사태: 알고리즘 신화의 붕괴

2022년 5월,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뒤흔든 테라-루나 사태는 블록체인 역사상 유례없는 붕괴 사건이었다. 테라 생태계는 UST라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과 그것을 지지하는 LUNA 토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원리는 이론상 그럴듯했다. 1UST가 1달러보다 떨어지면 사용자들이 LUNA를 소각하고 UST를 발행해 수급을 조절하고, 반대 상황에서는 LUNA를 발행해 시장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이 구조는 신뢰와 수요가 유지될 때만 작동하는 취약한 시스템이었다. 마치 댐의 물이 넘치기 직전까지 균형을 유지하다가, 한 방울의 투매가 전체 붕괴를 야기한 것처럼, 2022년 5월 초 UST가 1달러 밑으로 하락하면서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알고리즘은 자동으로 LUNA를 찍어내며 UST를 보호하려 했지만, 이는 되려 LUNA의 가치를 폭락시키는 악순환 구조였다. 며칠 만에 수십조 원 규모의 자산이 증발했고,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은 하루아침에 무일푼이 되었다.

당시 금융 전문가들은 이를 ‘암호화폐판 리먼 브라더스’라고 불렀고, 전 세계 거래소가 테라 생태계의 파급으로 연쇄 도산 위기에 몰렸다. 블록체인의 이상적 모델인 ‘탈중앙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신뢰는 산산이 조각났고, 규제기관들은 크립토 시장 전체에 대한 감독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테라 사태는 기술뿐 아니라 거버넌스, 의사결정 구조, 위험관리의 부재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여준 역사적 경고였다.

 

3. FTX 붕괴: 신뢰의 아이콘이 만든 초유의 사기극

샘 뱅크먼 프리드(SBF)가 이끄는 FTX는 한때 세계 2위 암호화폐 거래소였다. 선물과 파생상품 시장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 거래소는 깔끔한 UI, 빠른 거래 속도, 그리고 무엇보다 철저한 고객 보호를 앞세워 수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2022년 11월, 내부 자금 흐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며 모든 것이 무너졌다.

핵심은 FTX와 자회사 알라메다 리서치 사이의 불투명한 자산 이동이었다. 고객 자산을 담보로 알라메다에 대출하고, 이를 FTT라는 자체 발행 토큰을 담보로 돌려 막는 구조는 실질적인 폰지 구조에 가까웠다. 고객 자산의 안전한 보관을 약속한 거래소가, 사실상 내부 투자 손실을 메우는 데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단순한 사기극이 아니었다. SBF는 각국 정치인에게 기부하고, 기후 및 공익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윤리적 자본주의자’의 이미지를 철저히 마케팅했다. 수많은 유명 투자자들과 기관들이 그의 입장을 신뢰했고, 결국 파산 직전까지 FTX는 어떤 감사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수십억 달러 규모의 돈을 굴리고 있었다.

이 사건은 미국 SEC를 비롯한 금융 당국이 본격적으로 크립토 시장을 규제할 명분이 되었고, 이후 크립토 시장 전체는 대규모 ‘신뢰 회복’의 시간을 맞게 된다. 또한 크립토 산업이 스스로를 ‘기술 기반의 탈중앙 경제’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졌다.

 

4. BAYC 해킹: NFT 세계의 허술한 보안

NFT 시장의 상징인 BAYC(Bored Ape Yacht Club)는 한때 단순한 JPEG 파일 하나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거래되던 시대를 상징한다. 그러나 고가의 자산이 디지털 지갑에 저장되고, 이 지갑이 사용자의 SNS 계정 보안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언제든 보안의 취약점이 될 수 있었다.

2022년 4월, BAYC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이 해킹되었고, 가짜 에어드랍 이벤트 링크가 게시되었다. 수많은 사용자가 이를 클릭했고, 지갑이 연결되면서 NFT가 무단 전송되었다. 이 사건으로만 수십 억 원의 자산이 도난당했다. 피해자는 되찾을 수 없었고, NFT의 “소유권 증명”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유자 인증 시스템의 취약성에 무너졌다.

해당 사건 이후 NFT 시장에서는 보안 강화를 위한 하드월렛 사용, 멀티시그 보안, 스마트컨트랙트 자체 검증 시스템이 적극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시에 ‘NFT는 디지털 자산의 미래다’라는 내러티브는 현실의 보안 이슈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고, 많은 대중의 관심이 다시 중앙화된 플랫폼으로 회귀하는 흐름을 보이기도 했다.

 

5. 인간은 여전히 블록체인의 가장 큰 변수다

이 세 사건은 모두 공통된 교훈을 준다. 블록체인은 기술로서 거의 완벽한 신뢰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그 위에서 움직이는 인간과 제도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알고리즘이 아무리 견고해도 사람의 판단 하나에 흔들리고, 코드가 아무리 정교해도 SNS 계정 하나가 털리면 무력해진다.

블록체인은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완벽해지기를 꿈꾸는 인간이 만든 불완전한 도구일 뿐이다. 그 안에서 진짜 탈중앙을 실현하려면, 단순히 기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할지를 고민하는 책임 있는 구조가 먼저 필요하다.

“코드는 신뢰를 설계한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신뢰를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