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확산은 기술적 혁신을 넘어 경제적·사회적 패러다임 전환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최근 주목받는 개념이 바로 AI 토큰(Usage Token)과 추론고래(Inference Whale)이다. 이 두 개념은 AI 사용의 단위와 소비 패턴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틀을 제공한다. 전자가 ‘사용의 화폐 단위’라면, 후자는 ‘사용의 주체와 집중화 현상’을 설명하는 메타포라 할 수 있다. 본 글에서는 AI 토큰의 기술적 의미와 경제적 함의를 살펴보고, 추론고래가 나타나는 사회·산업적 현상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1. AI 토큰 : 계산과 비용의 단위
AI 토큰은 전통적인 암호화폐의 블록체인 토큰과 달리, 연산량을 측정하고 과금하기 위한 기술적 단위다. 자연어 모델이나 이미지 생성 모델을 호출할 때 입력(prompt)과 출력(output)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GPU 연산 자원이 사용된다. 이때 연산량을 직접 노출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자는 이를 토큰이라는 간단한 단위로 환산해 사용자가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한 문장을 입력하면 50개의 토큰이 발생하고, 모델이 긴 답변을 내놓으면 300개의 토큰이 소비되는 식이다. 이는 사용자가 “몇 번 썼다”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연산 자원을 소모했는가”를 기준으로 과금하는 체계를 만든다. 결국 AI 토큰은 디지털 시대의 전력량계(kWh)처럼, 사용량을 측정하는 정량적 기준이라 할 수 있다.
2. 경제적 관점에서 본 토큰화
AI 토큰은 단순한 계산 단위를 넘어 AI 경제의 화폐 역할을 한다. 사용자가 지불하는 금액은 결국 연산자원(GPU, TPU, 메모리, 전력) 사용량을 기반으로 책정되며, 이는 클라우드 인프라 제공자와 모델 제공자의 수익 구조를 직접적으로 결정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토큰 단위가 블록체인 기술의 결제 토큰과 결합할 가능성이다. 예컨대 AI 연산을 블록체인 토큰으로 결제한다면, 사용량과 비용의 투명성이 보장되고, 글로벌하게 유통 가능한 AI 사용 경제권이 탄생할 수 있다. 이는 결국 AI-as-a-Service 모델을 넘어, “AI-as-an-Economy”라는 새로운 단계로 진화할 잠재력을 가진다.
3. 추론고래: AI 소비의 집중화 현상
AI 모델이 텍스트나 이미지를 받아 답변을 내놓는 과정을 우리는 ‘추론(Inference)’이라고 부른다. 추론은 단순한 출력 과정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수많은 매트릭스 연산과 확률적 계산이 얽혀 있는 고비용 연산이다.
이 때문에 추론의 빈도가 늘어나면 토큰 사용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한두 번의 질문으로는 미미한 차이지만, 고객 상담, 대화형 검색, 자동 번역, 콘텐츠 생성처럼 대규모로 반복되는 서비스에서는 추론 횟수가 곧 비용 부담이 된다.
AI 산업에서는 최근 ‘추론고래(Inference Whale)’라는 신조어가 떠오르고 있다. 이는 엄청난 양의 추론을 실행하며 토큰을 대량 소비하는 대규모 사용자 집단을 지칭한다.
원래 ‘고래(Whale)’라는 단어는 온라인 게임이나 암호화폐 시장에서 큰손 이용자를 가리키는 은어였다. AI 생태계에서는 이 개념이 확장되어, 토큰을 수십억~수백억 단위로 소비하는 기업, 연구소, 플랫폼을 ‘추론고래’라 부른다. 예컨대, 글로벌 콜센터를 운영하는 대기업이 고객 대응을 모두 AI로 전환하거나, 매일 수백만 건의 자동 번역을 수행하는 서비스 업체가 대표적인 사례다.
AI 토큰이 사용 단위를 정의한다면, 추론고래는 사용 행태를 설명한다. 일반 사용자가 하루 수천 개 토큰을 쓰는 데 그친다면, 추론고래는 수억 개 이상의 토큰을 매일 소비하며 AI 생태계의 자원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흡수한다.
이러한 추론고래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 산업형 추론고래: 금융기관, 검색엔진 기업, 글로벌 SaaS 업체처럼 대규모 API 호출을 통해 AI 기능을 서비스에 내재화하는 조직.
- 개인형 추론고래: 생성형 AI를 활용해 콘텐츠, 코드, 마케팅 자료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파워 유저.
이들은 AI 경제의 초기 단계에서 수익성 높은 집단이자, 동시에 자원 독점 문제를 야기하는 주체로 작용한다.
4. 기술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
AI 토큰과 추론고래를 결합해 보면, 우리는 AI 사용의 사회학적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인터넷에서의 트래픽 구조와 플랫폼 집중 현상과 매우 유사하다. 소수의 대형 사업자(구글, 메타, 아마존)가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다수를 차지했던 것처럼, AI에서도 소수의 추론고래가 연산 자원을 흡수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집중화가 자원 가격과 접근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추론고래의 대량 소비는 GPU 확보 경쟁을 가속화하고, 중소기업이나 개인 개발자의 접근 비용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AI 경제의 공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격 차등 정책, 공유 연산 인프라, 블록체인 기반 투명 결제 구조 등이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
5. 향후 전망: AI 사용권의 금융화
향후 AI 산업에서 토큰 단위 과금은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단순히 텍스트 토큰이 아니라, 이미지·비디오·음성 등 멀티모달 추론이 본격화되면서 ‘토큰’의 정의도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추론고래들의 존재는 산업 내 권력 지형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 것이다. 중소 규모 서비스 제공업체는 추론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자체 모델 개발을 고려할 수 있고, 반대로 대규모 기업은 AI 기업과의 협상력을 키우며 독점적 지위를 강화할 수 있다.
결국 AI 토큰 경제는 새로운 권력 구조를 형성하며, 추론고래는 그 중심에서 시장을 재편하는 핵심 행위자로 자리 잡을 것이다.
AI 토큰과 추론고래의 결합은 단순한 기술적 개념을 넘어, 인공지능 시대의 경제와 권력 구조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토큰은 기술적 단위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화폐 단위이고, 추론고래는 그 화폐를 대규모로 소비하는 소비자이며 권력자다. 앞으로의 AI 산업은 이 두 개념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한 향후 AI 사용권 자체가 금융자산화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기업이 대규모 AI 연산권을 미리 확보해두고 이를 유동화하거나, 개인이 AI 토큰을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보유하는 시나리오가 등장할 수 있다. 이는 “데이터”에 이어 연산력(Compute)이 금융의 핵심 자산으로 부상하는 흐름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AI 토큰은 사용을 수량화하는 단위이고, 추론고래는 사용의 집중화를 드러내는 메타포다. 이 둘의 상호작용은 단순히 기술 소비 패턴을 넘어서, 새로운 디지털 경제 질서를 형성해나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연산권을 확보했는가’라는 질문을 더 자주 던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