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술의 확장성 문제를 해결할 가장 유망한 기술 중 하나인 ZK-VM(Zero-Knowledge Virtual Machine)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로 지식 증명에 대해서는 이미 블로그에서 다룬 바 있는 (8월17일: 제로 지식 증명 -'증거는 있지만 정보는 없다', 8월10일: zk, Rollup, L2... 도대체 이게 뭔가요?)주제이나 이번에는 ZK-VM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이제는 크립토스퀘어 구독자이면 알다시피 이더리움은 스마트 컨트랙트 플랫폼의 표준이 되었지만, 느린 처리 속도와 높은 수수료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ZK-VM은 이더리움의 핵심인 EVM(Ethereum Virtual Machine)에 영지식증명(ZK-Proof) 기술을 결합하여, 확장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동시에 강력한 보안을 유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 글을 통해 ZK-VM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이더리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1. 확장성의 딜레마와 영지식증명의 부상
이더리움은 모든 트랜잭션을 네트워크의 모든 노드가 검증해야 하는 '모놀리식(Monolithic)'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방식은 보안과 탈중앙화를 강력하게 보장하지만, 초당 처리할 수 있는 트랜잭션 수(TPS)가 제한적이라는 단점을 낳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롤업(Rollup)이라는 기술이 등장했다. 롤업은 수많은 트랜잭션을 외부 레이어(Layer 2)에서 처리하고, 그 결과값만 이더리움 메인넷(Layer 1)에 기록하는 방식이다. 롤업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 옵티미스틱 롤업(Optimistic Rollup): 모든 트랜잭션이 기본적으로 '낙관적(Optimistic)', 즉 올바르다고 가정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만 검증하는 방식이다.
- ZK 롤업(Zero-Knowledge Rollup): 모든 트랜잭션의 유효성을 '영지식증명'이라는 수학적 증명으로 증명하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 방식 중 ZK 롤업은 ‘수학적 확실성’이라는 강력한 장점 때문에 미래 확장성 기술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영지식증명은 거래 내용(정보)을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그 거래가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암호학 기술이다.
2. ZK-VM의 등장: ZK 롤업의 궁극적인 형태
ZK-VM(Zero-Knowledge Virtual Machine)은 영지식증명을 '스마트 컨트랙트의 연산'에 적용하는 기술이다. 특히 ZK-EVM(Zero-Knowledge Ethereum Virtual Machine)은 이더리움 가상 머신(EVM)의 모든 연산을 영지식증명으로 증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원리: ZK-EVM은 이더리움과 동일한 규칙을 따르므로, 개발자들은 기존에 이더리움에서 사용하던 도구와 프로그래밍 언어(Solidity)를 그대로 사용하여 ZK-EVM 위에서 dApp을 개발할 수 있다. ZK-EVM은 dApp이 실행한 모든 트랜잭션에 대해 '계산이 올바르게 실행되었다'는 영지식증명을 생성하고, 이 증명만을 이더리움 메인넷에 제출한다. 이더리움 메인넷은 복잡한 트랜잭션의 원본 데이터를 일일이 검증할 필요 없이, 이 증명(Proof)의 유효성만 확인하면 된다.
이는 마치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학생이 모든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여줄 필요 없이, "나는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사실을 '결과지' 하나로 증명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더리움은 복잡한 계산(수능 문제 풀이)을 ZK-EVM에 맡기고, ZK-EVM이 생성한 '결과지(영지식증명)'만 확인하는 것이다.
3. ZK-EVM의 종류와 기술적 차이
ZK-EVM은 이더리움과의 호환성 정도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뉜다.
- Type 1 (완벽한 호환성): 이더리움 메인넷과 완전히 동일한 EVM을 영지식증명으로 재구현하는 방식이다. 가장 높은 보안과 탈중앙화를 제공하지만, 기술적 난이도가 가장 높아 개발이 어렵다. 이더리움 재단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방향이다.
- Type 2 (부분적 호환성): 이더리움과 유사한 EVM을 구현하여, 대부분의 dApp이 코드 수정 없이 작동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폴리곤 zkEVM과 라인아(Linea)가 이 범주에 속하며, 개발 속도가 빠르고 실용성이 높다.
- Type 3 (높은 호환성): EVM과 유사하지만, 증명 생성을 쉽게 하기 위해 일부 기능을 희생하는 방식이다. 스크롤(Scroll)이 이 방식을 따르며, 개발이 빠르지만 일부 dApp은 코드를 수정해야 할 수 있다.
- Type 4 (언어 호환성): EVM 호환성이 아닌, 솔리디티(Solidity) 언어만 호환되도록 구현하는 방식이다. 스타크넷(StarkNet)이 이 방식에 가깝다. 증명 생성 효율이 매우 높지만 EVM과의 직접적인 호환성은 낮다.
4. ZK-VM이 이더리움과 롤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ZK-VM의 등장은 블록체인 생태계에 다음과 같은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 확장성 문제의 종결: ZK-EVM은 이더리움 메인넷의 트랜잭션 처리량을 이론적으로 수백, 수천 배 이상 늘릴 수 있다. 이는 블록체인이 비자(Visa)나 페이팔(PayPal)과 같은 중앙화 시스템의 처리량을 따라잡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 보안과 확장성의 공존: ZK-EVM은 트랜잭션의 유효성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므로, 옵티미스틱 롤업의 '7일 출금 지연'과 같은 문제 없이 즉각적인 결제 완결성을 보장할 수 있다. 이는 보안과 확장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탈중앙화 트릴레마'의 해법이 될 수 있다.
- 개발자 생태계의 통합: ZK-EVM은 기존 이더리움 개발자들이 익숙한 도구와 언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하여, 새로운 개발자들을 쉽게 유입시키고 이더리움 생태계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다.
- 롤업 시장의 재편: ZK 롤업이 기술적 우위를 점하게 되면, 현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옵티미스틱 롤업들은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ZK 기술을 도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5. ZK-VM의 기술적 도전과 미래 전망
ZK-VM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안고 있다.
- 증명 생성의 복잡성: 영지식증명을 생성하는 과정은 여전히 매우 복잡하고 많은 연산 자원을 필요로 한다.
- 기술적 성숙도: ZK-EVM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대규모 트래픽을 감당할 만큼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 지속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 상호운용성: 다양한 ZK-EVM 프로젝트들이 등장하면서, 이들 간의 호환성과 통일된 표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ZK-VM은 블록체인 기술이 단순히 '디지털 금'을 넘어, 현실 세계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강력한 인프라로 진화하는 중요한 단계다. 이는 블록체인이 금융, 게임, 소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